10. 간호사 10. 간호사 삼복더위에 우주복 같은 방호복 입은 간호사 누나 흐르는 땀에 이마며 콧등이 눌려 반찬고까지 붙였다 병실 하얀 벽에 지친 듯 기대앉은 모습을 보다가 마스크 쓰고 투정부린 내가 부끄러웠다. 2021.10.5. 11. 체온 측정기 마스크를 쓴 채 설 때마다 주눅이 든다 36.5 정상입니다 보이지도 않은 내 몸의 온도를 알다니 가끔은 속마음 들킬까봐 옷깃을 여미고 선다. 2021.10.5.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수평선 수평선 바다가 나누었을까 하늘이 나누었을까 하늘과 바다 사이 가로로 그은 뚜렷한 선(線) 하나 닿아도 떨어진 듯 떨어져도 닿은 듯한데 안개 잔뜩 낀 날 하늘과 바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누었던 그 진한 자리 사라지고 안보였다. 2021.10.4. 2021 상주문학 33집 게재.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정지용 시인 생가(生家)에서 정지용 시인 생가(生家)에서 동그마니 앉은 초가 부엌문 곁 사적지 문패가 푸른 녹이 슬고 있다 잘 비질 된 흙 마당에는 해 그림자 사이로 촉촉하게 물기가 젖어오고 꽃밭 한 쪽엔 빨갛게 익은 꽈리들이 꽃등을 달고 있다. 마당 언저리 ‘향수’ 노래 속 얼룩배기 황소 한 마리 한가롭게 되새김질을 하는데 생가 안방 액자 안에 시인이 쓴 ‘할아버지’ 시 한편 기웃대는 나그네들 헛기침 소리에 액자 밖으로 문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. 2021. 10.2. 2021 상주문학 33집 게재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텃밭일기 고구마 텃밭 일기 1. 고구마 심기 엄마가 세 마디씩 자른다 잘 자란 고구마 순을 이상하다 뿌리도 없는 순 이랑에 빗겨 심겨 가뭄을 견디는 고구마 순 참고 견뎌야 많이 달린단다 고구마는 마른 줄기사이로 새순이 돋았다 참새 부리 같은 씩씩하다 뿌리도 없는 줄기에 저렇게 새순이 돋는구나. 2021. 10.1 2021년 푸른잔디 37호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감나무 감나무 김재수 호박순 연한 줄기에 어깨 잠시 빌려주더니 여린 가지가 등짐을 지고 섰다 허리가 휘도록 매달린 누런 호박 두 덩이 가을바람에 잎 지듯 떨어지면 어쩌나 굽은 허리 펴지 못해도 잘 견디고 섰다. 2021.9.24. 2021년 푸른잔디 37호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웃긴다 웃긴다. “아이쿠 구린내야” 돼지우리 지나다가 코를 막았다 “냄새를 잘 맞는다는 건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거란다” 아빠의 말씀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2021. 7. 30.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집합금지 집합금지 넷 이상 모이면 안 돼 애기똥풀 꽃 개망초꽃 무리지어 웃고 있고 넷 이상 만나면 안 돼 나뭇가지에 새떼들 무리지어 떠들고 있는데 언제 신나게 만나지 방학해도 소용없는 이놈의 집합금지 2021. 7.25.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천둥번개 치는 날 천둥번개 치는 날 번쩍!!! 우르르 꽝! 하늘이 화가 났나보다 잘못한 게 없는지 가슴을 쓸어내려도 콩닥콩닥 뛰는 가슴 아무렇지 않게 친구 흉을 본 일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엄마 아빠랑 함께 있어도 가슴은 콩닥콩닥. 2021. 6.26 2021년 푸른잔디 37호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장미 장미 김재수 담장 너머로 밝게 웃고 있다 철조망 그 안에 누가 사는지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데 날카로운 철조망을 푸른 잎으로 덮고 구부러진 오월의 골목 가득 향기로 채웠다. 2021.6.22 2021 동학에 원고. 나의 문학/동시 2022.01.07
문패 문패 우리 집 출입문에는 106동 103호였는데 어느 날 묵직한 나무 문패 하나 달았다 기름칠 잘 먹은 나무판에 먹물 선명한 ‘김재수’라는 글자 엄마는 촌스럽다고 반대했지만 우리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온 가족의 마음이 들어있다고 자주 쓰다듬는 아버지의 투박한 손 문패 나무만큼 든든해 보였다. 2021. 6.4 나의 문학/동시 2021.06.05